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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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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우리고장 현충시설 소개(3)
부서 보훈과
◈ 우리고장 현충시설을 찾아서(3) - 숭렬사 ♣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 ♠ 건립기관 : 진천군 ♠ 건립일자 : 1987. 3. 31(’97 재정비) ♠ 건립비 : 880백만원 ♠ 관리기관 : 진천군(☏ 043-539-3311) ♠ 시설규모 - 부지 10,028㎡(약 3,030평) - 생가, 사당, 비각, 동상, 가묘 및 전시관 ※충청북도 지방기념물 제77호(1987. 3. 31 지정) 헤이그 밀사의 정사(正使)이신 보재 이상설선생(1870.12.7~1917.3.2 : ’62 건국훈장 대통령장)의 항일독립정신을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 국민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선생의 출생지인 진천군 산척리에 건립한 사당이다. 매년 3월 2일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보재 선생의 추모제가 거행된다. ※ 보재 이상설선생(1870. 12. 7 ~ 1917. 3. 2)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산척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 문과에 급제, 1896년 성균관 교수 겸 관장에 임명되었다가 사임하고 한성사범학교 교관에 임명되었으며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외국어와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1905년 의정부 참찬에 임명되었으며, 일제가「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을사5적을 처단하고 을사조약을 파기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1906년 4월 망명하여 이동녕, 정순만 등과 함께 북간도의 용정에서 1906년 8월 항일 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간도 일대 교육구국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의 정사(正使)로서 이준과 함께 러시아 황제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하고,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도착하였으나 일본 및 영국대표의 방해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이에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공고사(控告詞)를 평화회의의 각국대표에게 보내고 국제여론에 한국의 독립요구를 부각시켰다. 7월 14일 이준이 헤이그에서 순국하였으며, 일제는 8월 9일 궐석재판에서 정사(正使)인 이상설에게는 사형, 부사(副使)인 이준과 이위종에게는 종신징역을 선고하였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후 연해주와 간도 일대의 교포들을 규합하여 성명회를 조직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열강에게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한국민족의 독립결의를 밝히는 선언서를 보냈다. 이에 일제는 1910년 9월 11일에 러시아 당국과 교섭을 벌여 이상설을 비롯해서 이범윤 등 성명회 간부들을 체포했다. 1916년 니콜리스크에서 투병 생활 중 48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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