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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북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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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충주)신니면민독립만세운동재현행사
충주지역에서 3 · 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유일한 지역인 신니면 용원장터일원에서 오는 4월 2일(월) 10시부터 「4·1신니면민독립만세운동재현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이곳에서 처음 개최되는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는 신니면사무소가 주최하고, 충주보훈지청(지청장 이우석)에서 후원하며 참석자 전원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용원장터 일원을 돌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재현행사를 실시한다.
용원만세운동은 당시 신니면의 유일한 사학이었던 "용명학당" 출신의 선후배간이며 신니면 신청리의 향우들인 단경옥, 이희갑, 손승억, 윤주영, 윤무영, 이강호, 김은배, 손석근, 이강렴 등 청 · 장년들이 주도면밀하게 서울과 지방간에 상호연락을 취하면서 서울과 동시에 일으켰던 독립만세운동이었다. 1919년 고종황제가 일본인들에게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확대되고 같은 해 2월 8일 도쿄 유학생 독립선언에 자극되어 온 민족의 울분이 한데 뭉쳐 단경옥이 서울에 가서 독립선언문을 얻어 왔으나 인쇄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동지의 한 사람인 이희갑이 그의 집 윗방에서 며칠간 밤새워 붓으로 써서 독립선언문을 만들고 습자지에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손석근 등은 이와 같은 거사계획을 비밀리에 이웃동네 친지들에게 알림으로써 계획을 진행하였다.
1919년 4월 1일. 서울에 있던 사람들과 약속한 그 날은 마침 용원장날이었다. 정오경 장터에 나가서 모여든 약 200명의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면서 손승억은 독립선언문을 목이 터져라 낭독하는 등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입은 있으되 말하지 못하던 그 때, 국민 모두가 바라고 열망하던 단어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삽시간에 온 시장통을 뒤흔들며 메아리쳐 갔다.
그러나 당시 신니면주재소 순경과 직원들은 만세소리에 뛰쳐나와 공포를 쏘며 칼을 휘둘러 군중을 해산시키려 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충주의 헌병대에 긴급 연락을 취하자 헌병들이 도착하여 무자비한 방법으로 군중을 해산시켰고 주모자들에게는 무자비한 고문을 시작하였다. 그 참혹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전한다.
용원장터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는 모두 9명으로 확인되었으나 형을 선고 받은 이는 7명(이강렴, 손석근은 형을 받지 않았음)으로, 이들 용원만세 운동의 주역들은 당시 혈기왕성했던 20대 청년들로서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고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체포된 후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들의 공훈을 기리어 손승억 선생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단경옥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이희갑, 윤주영, 윤무영, 이강호, 김은배 선생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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