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대구지방보훈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10월 셋째주 탐방 - 동암 서상일 선생 동상(2003.10.20)
부서 지도과
□ 소재지 : 대구 달서구 성당2동 670-30(원화여고 교정) □ 건립기관 : 학교법인 조양회관 □ 건립일자 : 1988. 10. 15 □ 시설규모 : 부지 20평, 높이 3m □ 관리기관 : 원화여자고등학교 □ 시설관련 행사 : 동암선생 추모제(매년 4월 18일) □ 내 용 동암 서상일 선생(1887 - 1862.4.18)은 대구(大邱) 출신으로 1909년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안희제(安熙濟) 김동삼(金東三) 윤병호(尹炳浩) 남형우(南亨祐) 박중화(朴重華) 배천택(裵天澤) 등 8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조직하여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한 후에는 1913년에 대구에서 박상진(朴尙鎭) 등 동지들과 함께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의 일을 했으며, 1915년에는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한 후, 1920년 3월에 만주로부터 무기를 반입하여 일제기관을 습격할 계획을 하다가 한때 일제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미국에서 열린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고 그 서명대표로 활약하였다. 1924년에는『농림(農林)』과 『민중운동(民衆運動)』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흑우회(黑友會) 계통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송진우(宋鎭禹), 장덕수(張德秀) 등과 함께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을 창립하여 총무로 선임되었으며 1948년에는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헌법기초위원으로 활약하였고 제헌국회 말기에는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발기하여 최초의 개헌안을 제기했다. 1950년대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활동을 벌여, 1956년 진보당(進步黨) 창당에 참가하여 간부가 되었으며, 1960년에는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을 창당하였다. 1960년에 제5대 민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신병으로 활동을 못하다가 1962년에 병사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90)(대통령표창 ’63)을 추서하였다
파일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