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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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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의병장 『생애와 구국성전』학술 강연회
부서 지도과
왕산 허위 선생 탄신 150주년 고향 구미에서「생애와 구국성전」학술강연회 ⊙ 1월 29일(목) 오후 2시 구미시립도서관 강당 ⊙ 경북 선산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을 조명하는 학술강연회가 1월 29일(목) 구미시립도서관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광복회·독립기념관이 200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공동 선정한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1854.4.1∼1908.9.27)은 의병항쟁을 통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신 독립운동가이다. 경북 선산 유학자 집안이자 독립운동가문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성리학을 수학한 유학자로서, 충효사상과 위정척사상에 입각한 애국애족의 민족정신을 갖고 있었던 선생은 1895년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고 단발령이 반포되자 이에 분개하여 1896년 경북 김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진을 조직하여 김천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충북 진천까지 진격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이 강제 체결되어 국망의 위기 상황이 도래하자 1907년 9월 경기 북부지역을 근거지로 재차 의병을 일으켰다. 특히 1907년 11월 전국 의병 연합체인 13도창의군의 편성을 주도하고, 군사장으로 그 해 말부터 두달여 동안 서울 탈환작전을 펴 동대문 밖 10리까지 진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 진공작전 뒤 경기북부 지역으로 이동한 선생은 임진강과 한탄강을 무대로 일본군 진지 공격, 관공서 습격 등 강력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던 중 일제에 피체되어 1908년 9월 27일 서대문감옥 교수대에 올라 55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盡忠碣力)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국욕(國辱)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허위는 관계(官界) 제일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 라고 선생의 애국 활동과 정신을 칭송한 바 있다. 이번 학술강연회는 이러한 선생의 공적과 정신을 되새기기 위하여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주최, 국가보훈처, 구미시, 광복회대구경북연합지부, 3.1운동기념사업회 후원으로 열리게 되었다. 이 날 강연회에서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박민영 박사가 「왕산 허위 선생의 생애와 구국성전」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며 장대섭 대구지방보훈청장, 김관용 구미시장, 권준호 광복회대구경북연합지부장, 허위 선생의 유족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학술강연회와 더불어 독립기념관과 서대문독립공원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와 사진을 1월 한달 동안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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