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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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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둘째주 탐방 - 애국지사 해영 신철휴선생 기념비
부서 지도과
애국지사 해영 신철휴선생 기념비(愛國志士 海影 申喆休先生 紀念碑) □ 소재지 : 경북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가야공원 내 □ 건립기관 : 고령문화원 □ 건립일자 : 1983. 5. 10 □ 시설규모 : 높이 1.7m □ 관리기관 : 고령군 □ 내용 신철휴 선생은 경북 고령(高靈) 사람으로 일명 신우룡, 신룡이라고 한다. 1919년 9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1월 9일 만주 길림성(吉林省) 파호문외(巴虎門外)에서 의열단(義烈團)의 결성에 참가하였다. 의열단 결성 당시 참여한 인물은 황상규(黃尙奎)·김원봉(金元鳳)·곽재기(郭在驥)·윤치형(尹致衡)·신철휴(申喆休)·이종암(李鍾岩)·이성우(李成宇)·윤소룡(尹小龍)·서상락(徐相洛)·김태희(金台熙)·배중세(裵重世)·이낙준(李洛駿)·강세우(姜世宇) 등으로 단장인 의백(義伯)에 김원봉을 선출하고 무력투쟁·직접행동을 통하여 조국독립을 쟁취하자는 기본방침을 수립, 국내 전국에 걸쳐 적기관의 파괴와 교란·암살 등을 실천하기로 하였다. 의열단 조직후의 첫 사업은 밀양경찰서 폭파거사였다. 1920년 초 그는 곽재기 등과 만주로부터 폭탄 등 무기를 가지고 입국, 먼저 밀양경찰서 폭파거사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1920년 6월 구영필(具寧必)의 밀고로 사전에 피체되어 1921년 6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이후 활동을 계속하다가 1927년 의열단원 이종암(李鍾岩)의 세칭 '경북의열단사건' 및 1928년 '청주일심단(淸州一心團)사건' 등에 연루되었으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그후 1928년 10월 신간회 고령지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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