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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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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우리고장출신 독립운동가 이성춘(李成春)
부서 보훈과

 전북 옥구 사람이다.
 이성춘은 옥구군 서수면에서 소작투쟁을 전개하였다.
 1927년 10월 2일 옥구군 서수면에서는 일본인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고,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장태성,박상호,김영준 등에 의해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신문관,정영운,최은엽 등과 더불어 회원 모집에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회원수가 약 2백 명이 되었다.
 1927년 11월 25일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농장이 소작 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장태성과 김행규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 제등신일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지부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본경찰에게 피체되었다. 저녁 무렵 이진섭은 장태성이 군산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서수면 임피 경찰관주재소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이성춘은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임피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 돌아가는 도중 서수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피체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그곳을 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그러나 이성춘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합원 및 농민 80여 명과 함께 피체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성춘은 미결기간 중 3개월여의 옥고를 치르고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소위 구금자 탈취 및 소요혐의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보눈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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